읽다가 내 머릿속에 흐릿하게 있던 생각을
선명하게 잘 표현해줘서 행복하게 읽었던 구절을 남겨본다.
라울은 근본적으로 무신론자였다.
그는 모든 일에서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를 바라는 현대인이라면 무신론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내세웠다.
그가 보기에, 회의주의는 유신론보다 한발 더 나아간 태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존재가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가 보기에는 무신론조차도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그 문제에 관한 하나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오만한 태도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어떤 신이 가엾은 피조물인 우리 지구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면, 나는 아마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신중한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내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나의 불가지론은 세계를 보는 나의 관점과도 일치했다.
내가 보기에 세계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일 뿐이었다.
신에 대한 견해가 전혀 없었으므로 나는 세계나 인간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었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우연히 생긴 것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내 인식을 초월하는 본래적인 섭리 같은 것이 자연에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이따금 들기는 했다.
* 불가지론 不可知論 / Agnosticism
일반적으로 어떤 명제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보통 불가지론은 종교적 관점에서 논의되므로 이때 그 '어떤 명제'는 신이나 초월자, 혹은 초자연 현상에 대한 관점이 된다.
종교적 관점에서의 불가지론은 간단하게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머릿속에 흐릿하게 있는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이 맞아 그렇지 하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작가들의 능력이 멋있다.
읽으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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