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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마음과 책읽기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by 나는갱자 2024. 12. 11.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은 많은데 일목요연하고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해나가면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 할 수 있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판사님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능력에 감탄했다. 부럽지만 부러워 할 자격도 없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들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몇가지 좋았던 부분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세상을 아군과 적군, 정의와 불의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심리를 투영하여 과잉 열광하거나 조금이라도 자기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면 배신자 취급을 하며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대학 입시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를 실시하듯 지역 균형 전형, 기회 균등 전형과 같은 조치의 중요성은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더 커질 것 같다.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에 관한 원칙인 존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를 배려하기 위한 불평등은 정의에 부합한다고 하여 실질적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반대로 실제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것은 무조건 옳다고 보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실은 그 반대가 맞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식재료도 자연 상태 그대로는 독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인위적인 종자 개량을 통해 먹을 수 있게 만든 것들이다. 인류는 자연 상태의 폭력성을 문명화 과정을 통해 극복하여 현대적인 평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은 지금의 발전한 문명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에 따라 옳은 것은 더욱 복돋우고 그릇된 것은 제어해야 한다. 

 불편한 진실 자체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왜곡하지 말고, 그 진실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한쪽 측면만 이야기하고 다른 측면은 애써 외면하는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는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은 비극이다. 역사의 두 측면을 있었던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얼마든지 지금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히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집단의 논리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건 위험하다. 어느 집단도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갖고있지 못하다. 남의 판단으로 자기 판단을 대체하지 말고 각 개인이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실사구시 정신이 필요하다. 막연한 믿음보다 실증적 근거를 들어 토론하고 최선이 안 되면 차선,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할 수 있어햐 한다. ... 어느 한쪽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승리란 존재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관계,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상대를 몰살시키는 전쟁이 아닌 이상 중간에서 타협하는 게 현실적이다. 당파적 진영 논리는 이런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생략하려는 게으름이다. 

 문제의 다층적인 구조를 직시하자고 하면 대뜸 비겁한 양비론이라는 비난이 쏙다진다. 양비론이 아니라 심비론 사비론이더라도 맞는 건 맞는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재판도 양비론이다. 손해배상 책임을 정할 때 피해자측의 과실도 참작한다. 

 

 하긴 정신연령 낮은 나 역시 굳이 무슨 주의자인지 물으신다면 모든 집단주의를 혐오하는 '전투적 개인주의자'이며, 이념보다는 태도가 후진 사람, 그리고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을 더 견디기 힘들어한다. ... 그러다보니 원자력발전소 건설, 한미FTA 체결 등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다층적 갈등 구조의 문제를 진영 논리로 단순화해서 선악 구도로 몰고가기도 하고 반대로 이념과 무관한 일상적인 문제에도 이념의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 

 

 요약하면 인류의 역사는 원래 내내 끔찍이도 폭력적이었으므로 현재가 그나마 가장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폭력을 감소시킨 원동력인지를 분석한다. 묘하게도,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또는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내 지론과도 통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